2011/12/26

독도, 국제사법재판소 가면 이길 수 있을까?

독도, 국제사법재판소 가면 이길 수 있을까?
[오마이뉴스] 2011년 11월 30일(수) 오후 01:51
[오마이뉴스 김경년 기자]





"한국 대표단이 안으로 걸어들어갔다. 그 뒤로 취재진이 카메라 플래시를 터뜨리며 구름처럼 몰려갔다. 주변에는 응원하기 위해 원정을 온 한국인들이 '대~한민국, 짝짝짝 짝짝'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었다... 한국의 뉴스 방송에서도 광화문광장에 응원하는 사람들이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는 장면이 나왔다. 그때까지 찬반으로 나뉘어 갈등하던 사람들이 싸움을 중단하고 합심하여 승리를 성원하고 있었다." - <본문 385쪽 요약발췌>

소설 <독도인더헤이그i> 표지
ⓒ 도서출판 황매

























마치 월드컵 16강전이나 축구 한일전을 앞둔 경기장 앞 분위기를 스케치한 것 같은 이 장면은 의외로 재판소 앞 풍경이다. 그것도 네덜란드 헤이그에 있는 국제사법재판소.

일본 정부는 독도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국제사법재판소로 가자'는 주장을 입버릇처럼 해댄다. 그러나 한국 사람 누구도 독도 문제를 재판에 가서 해결하는 것을 원하지는 않을 것이다. 아니, 독도는 누가 뭐래도 우리땅인데 왜 재판을 한단 말인가. '독도는 역사적으로나 국제법상으로나 우리 고유의 영토'란 말을 귀에 못이 박히게 들어오지 않았던가.

그럼 과연 독도 문제를 가지고 재판에 갈 가능성은 전혀 없을까. 한국과 일본간의 독도 문제를 다룬 화제의 소설 <독도인더헤이그>의 개정판 <독도인더헤이그i>가 새로 나왔다.

지난 2009년 처음 세상에 나왔던 <독도인더헤이그>는 '독도 문제가 국제사법재판소로 가서 일본과 소송을 벌인다'는 독특한 내용과 저자가 현직 판사라는 점 때문에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왔다. 신문, 방송, 인터넷 등 많은 언론에서 칼럼과 저자 인터뷰로 소개됐고 독도 관련 연구모임에서는 서평회를 열었으며, 군 장교들이 단체로 구입해 읽었다는 후문이 있었다.

급기야 외교통상부 장관은 이 책을 3일만에 읽고 저자 정재민(34) 판사를 외교부로 초빙, 최초의 독도법률자문관으로 위촉하기도 했다.

☞[인터뷰] "일 자위대가 독도 포위해 국제재판소 간다면?"

소설은 '어느날 갑자기 일본 해상자위대 함대가 독도를 포위한다'는 가정에서 출발한다. '우리가 동의하지 않으면 재판에 갈 일이 없다'고 느긋했던 우리 정부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정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고, 안보리가 독도 영유권 문제를 국제사법재판소(ICJ)에 회부함으로써 독도 문제로 재판을 벌이는 상황이 현실화한다.

독도는 '당연히' 우리땅이므로 설사 재판이 벌어지더라도 우리가 불리할 게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읽을 필요성이 충분하다.

재판 가능성이 없다며 손놓고 있었던 우리와 수십 년간 재판을 준비해왔던 일본측의 재판 역량은 초등학생과 대학원생 만큼의 차이가 있다. '독도는 우리땅'임을 주장하는 우리측의 주장은 군데군데 어설픈 논리가 드러나고 그 틈을 파고들어오는 일본 측 소송단의 칼날은 예리하기 만하다.

일본측은 이미 오래 전부터 국제법 학자와 로펌 변호사 등 세계 유수의 국제법 전문가들을 자기편으로 포섭해놓고 있다. ICJ 재판장을 배출하기도 했다. 한국 측이 데려올 전문가는 이미 바닥이 났다. 오죽하면 가장 중요한 최종변론자로 고작 외교통상부의 이등 서기관(일반 행정부서의 사무관급)을 상정했을까.

이 소설은 독도의 영유권에 관한 머리 아픈 논리 싸움만 있는 게 아니다. 독도가 우리땅이라는 확실한 역사적 근거를 제공해줄 고대의 책 <가락국기>가 있는 곳을 찾아내는 과정은 소설 <다빈치코드>와 영화 <인디애나 존스>를 합쳐놓은 것과 같은 재미와 박진감을 제공한다. 특히 개정판 <독도인더헤이그i>는 스토리와 인물 설정을 보다 정교하게 다듬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개정판 <독도인더헤이그i>는 제목에 'intelligence'를 뜻하는 'i'를 넣은 만큼 <독도인더헤이그>가 나온 뒤 이뤄진 외교, 국방, 국내정치의 변화된 현실을 반영하고, ICJ에서 벌어지는 법정공방 분량을 서너 배로 늘려서 독도에 관한 주요 쟁점 대부분을 다루려고 노력했다.

저자 정재민 판사는 "시중에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수많은 독도 관련 책들이 나와있지만, 지나친 애국심에 일본측 논리를 제대로 소개하지 않고 우리측을 위해서도 설득력이 떨어지는 논리를 제시하는 경우가 많다"고 아쉬워하며 "<독도인더헤이그i>는 독도에 대한 대부분의 역사적, 국제법적 쟁점들을 포함시킨 만큼 이 책이 초중고대학생의 독도 부교재로 사용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정 판사는 이어 "독도를 지키기 위해서는 국민 대다수가 독도에 대해서 깊이있게 이해하는 게 중요하다"며 "앞으로 독도에 관심이 많은 학생들을 선발해서 'i독도변론팀'을 꾸려 모의국제재판을 개최하는 등 홍보활동에도 적극 나설 계획"이라고 말했다. i독도변론팀에 관심있는 학생은 http://cafe.naver.com/dokdoi 에서 신청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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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2/01

독도가 등장하지 않는 문서는 독도 문제의 자료가 될 수 없다


"조선 과거시험에 울릉도·독도 영토 문제 출제됐다"

조선일보 2011.11.14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1/11/14/2011111401282.html?news_Head2


대구변협, 17세기 고문서서 발견

조선 숙종(1661~1720년 재임) 시대 과거(科擧) 시험에서 울릉도·독도 영토 문제와 관련해 일본을 대처하는 방안을 묻는 문제가 출제됐음을 보여주는 고문서(사진)가 최초로 발견됐다.

대구지방변호사회 독도특별위원회는 14일 특위 부위원장 방문일(48) 변호사가 최근 경북 경산시 하양읍 사단법인 국한연구소 대구·경북지부에서 독도 관련 고문서를 발견했고, 분석을 의뢰받은 전문가가 이같은 의견을 냈다고 밝혔다.

대구변호사회에 따르면 이 고문서는 경북 의성지역 선비였던 신덕함(申德函.1656-1730)이 남긴 문집에 있는전책(殿策)’ 형식의 글이다. A4 용지 크기인 이 고문서는 임금이 묻는 책문(策問) 1장 반, 답하는 대책(對策) 12장 반으로, 14장으로 돼 있다. 이글은 숙종이 1693년 발생한 울릉도쟁계(鬱陵島爭界)에 대해 과거 응시자들에게 대책을 묻고, 신덕함이 답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울릉도쟁계는 안용복 등이 울릉도에서 어로작업을 하다 일본에 납치된 뒤 조선과 일본 사이에서 발생한 울릉도·독도 영토 분쟁을 의미한다. 이후 안용복은 일본에 가서 막부로부터울릉도와 독도는 조선의 것이라는 내용의 외교문서인 서계(書契)를 받아냈다.

독도전문가인 한아문화연구소 유미림 박사는글에서 언급된 문제가 구체적이라는 점을 볼 때 과거시험에 실제 출제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신덕함이 전시에 응시했을 때 나온 문제나 다른 응시자가 말한 문제를 옮긴 것으로 보인다면서여러 정황상 1696년 치러진 문과전시(文科殿試)일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이 글에서 임금은울릉도가 멀리 동해에 있는데 강원도에 속해 있다. 수로가 멀고 험해 섬사람들을 데리고 나오면서 현재 비어 있다. 요즘 일본인이 죽도(竹島)라 부르면서 백성들의 어로 활동을 금지해 달라고 요청했는데, 우리 입장을 설명해도 (일본은) 들을 생각이 없다면서혹자는 장수를 보내 점거해 지키자고 하고, 혹자는 혼란을 만들지 말고 일본인의 왕래를 허용하자고 하는데, 변방을 편안히 하고 나라를 안정시킬 방도를 강구해 자세히 나타내도록 하라고 했다.

이에 신덕함은국내에서 대책 담당자를 잘 선정하고, 덕을 통해 일본 내에서 부당한 영토야욕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얻어가자는 방법을 제시했다.

유 박사는울릉도쟁계 관련 기록이 조선왕조실록 등 관찬 사서에 남아 있고, 과거 시험에도 관련 문제가 나왔다. 당시 울릉도·독도 문제가 국가적 중대사였음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유 박사는 이 고문서와 관련된 논문을독도연구소 영토해양연구에 발표할 예정이다.











조선 숙종 때로 추정되는 이 문제에 독도에 대한 직접적 언급은 없지만 독도를 포함한 울릉도 방위 문제가 관심사였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KBS뉴스 2011.11.15
http://news.kbs.co.kr/society/2011/11/15/2388613.html








 

한아문화연구소 유미림 소장은독도라는 말이 문서에 등장하지는 않지만 울릉도란 말에 포함되어 있다고 봐야 한다 “‘울릉도쟁계관련 기록이 조선왕조실록 등 여러 사서에 남아 있는 상태에서 과거시험에까지 독도 문제가 등장했다는 것은 당시에도 울릉도와 독도가 한일 관계에 있어 상당히 중요한 외교현안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동아일보 2011-11-15
http://news.donga.com/Society/New/3/03/20111114/41879241/1













한국 사람들 여러분,


유미림 소장은 아무 근거도 없는 말을 하는군요?

 

독도라는 말이 등장하지 않는 문서가 어째서 과거시험에 독도 문제가 등장했다는 증거가 된다고 할 수 있지요?
 

이러한 근거 없는 망상을 가지고서는 일본과의 영유권 논쟁에 이길 수 없습니다.
 

이렇게 무책임한 말을 하는 연구자를 신용하고 있어도 좋은 것일까요

2011/11/26

한국의 책임

1954년 10월 28일
타케시마에 관한 일본의 제안의 거부에 대한 일본 외무성 정보 문화국 성명서



한국 정부는 타케시마에 대한 영토권에 관한 분쟁을 국제사법재판소에 제기하려는 9월 25 날짜의 일본 정부의 제안을 거절했다. 한국 정부의 행동은 1954년 10월 28 날짜의 각서로서 주도쿄 한국 대표부에 의해서 외무성에 전달되었다.
일본 정부는 타케시마에 대한 일본의 영토권에 관해서 전혀 의의가 없다. 그러나, 한국 정부가 전혀 무근의 용납 할 수 없는 논쟁을 주장해 왔기 때문에, 일본 정부는 해외에 있는 가장 공평하고 권위 있는 국제 재판소에 분쟁을 결정하기 위해 이 분쟁을 부탁 하도록 제안했다.
한국 정부가 무슨 이유로부터 국제사법재판소를 기피 하는지 이해 하기 어렵다.

일본 정부가 분쟁을 평화적으로 해결하려고 하는 진지한 희망으로부터 한 제안 한국 정부가 수락하는 것을 거부하는 한, 한국 정부는 타케시마 문제에 대해 발생하는 모든 분규에 대해서 전적으로 책임을 지지 않으면 안 된다.

2011/09/09

동아일보는 다케시마/독도 불법 점거를 인정하고 있다

[책갈피 속의 오늘] 1952년 이승만 평화선 선포

동아일보 2006-01-18
http://news.donga.com/3//20060118/8267102/1


1952년에 접어들면서 일본 어민들은 4월 28일을 손꼽아 기다렸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일본이 연합국 측과 제2차 세계대전 종결을 위해 1951년 9월 8일 체결한 강화조약이 그날 발효되기 때문이었다. 일본을 점령한 미국의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은 일본 어민들이 ‘본토’ 주변의 정해진 선을 벗어나 조업할 수 없도록 했다. ‘맥아더 라인’으로 명명된 이 선은 강화조약 발효와 동시에 폐지될 터였다.

1952년 1월 18일. 100일 뒤면 동해는 일본 어민들의 텃밭이 될 판이었다. 바로 이날 바다 건너, 전화(戰火)에 휩싸인 대한민국의 임시수도 부산에서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날아들었다. 대한민국 대통령 이승만이 ‘확정한 국제적 선례에 의거하고 국가의 복지와 방어를 영원히 보장하지 않으면 안 될 요구에 의하여’ 해안에서 50∼100마일에 이르는 해상에 선을 긋고 ‘인접 해양에 대한 주권 선언’을 한 것이다.

일본으로선 아연실색할 노릇이었다. 일본은 이를 ‘이승만 라인’이라 부르고 철폐를 강력히 요구했다. 우방인 미국, 자유중국도 비난했으나 이승만은 까딱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한일 간의 평화를 위한 것이라며 ‘평화선’으로 불렀다. 일본 정부가 어민들에게 ‘이승만 라인’을 무시하라고 하자 한국 정부는 군함까지 동원해 ‘평화선’을 넘는 일본 어선을 가차 없이 나포했다. 그 과정에서 일본 어민 1명이 숨지기도 했다. 1961년까지 나포된 일본 어선은 300척이 넘고 억류된 일본인은 4000명에 가까웠다.

평화선은 어업 보호의 절박함이 낳은 산물이다. 당시 국내 어선을 모두 더한 총톤수는 10만 t. 그나마 대부분이 무동력선이었다. 일본은 총톤수 200만 t에다 그중 상당수가 한국 경찰선보다 빠른 ‘첨단’이었다. 맥아더 라인이 사라지면 한국의 어업이 침몰할 것은 뻔했다.

그렇다고 평화선이 어업의 보호만을 노린 건 아니다. 평화선 안에 독도를 포함시킨 것이 절묘했다. 강화조약의 ‘일본이 포기할 지역’에 독도를 넣어 달라는 요구가 거부되자 선수를 친 것이다. 다급해진 일본은 열흘 뒤 ‘한국의 일방적인 영토 침략’이라며 ‘독도 문제’를 쟁점화했으나 이미 기선을 제압당한 뒤였다.

항일 투사 이승만의 쾌거인 평화선이 한일 국교정상화 조약 조인(1965년 6월 22일)과 함께 역사 속으로 사라지자 우리 국민은 울분을 토했다. “얻은 것은 돈이요, 잃은 것은 평화선이다.”

여규병 기자 3spring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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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람들  여러분,  샌프란시스코  강화 조약에 있어서 일본은  다케시마/독도를  방폐하지 않았습니다.  다케시마/독도는 일본의 영토입니다.  이승만이  이 라인(평화선)에 의해서 일본의 영토를 불법으로 침탈 해 점거해 왔습니다.  동아일보도 그것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2011/08/10

한국이 다케시마/독도 불법 점거를 계속할 수 있는 이유

한국은 1952년 1월 18일 리라인(한국에서는 평화선이라고 함)의 선언에 의해서 다케시마를 일본으로부터 강탈해, 이후 불법 점거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이미 약 60년이나 지났습니다. 한국 정부는 왜 불법 점거를 60년간이나 계속할 수 있었는지요?
그 해답은 일본의 헌법에 있습니다.



<일본국 헌법>
제9조
  일본국민은 정의와 질서를 기조로 하는 국제 평화를 성실하게 희구(希求)하여, 국권의 발동인 전쟁과 무력에 의한 위협 또는 무력행사는 국제분쟁을 해결하는 수단으로서는 영구히 이것을 방폐한다.
2  전항(前項)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육해공군(陸海空軍)기타 전력(戦力)을 가지지 않는다. 나라의 교전권(交戦権)을 인정하지 않는다.


일본국민은 국제분쟁을 해결하기 위해서 무력을 사용하지 않는 것을 결정하고 있습니다. 세계에서 이런 무력 불사용 헌법을 가지는 나라는 아마 일본 뿐이지요. 그 결과, 일본은 다케시마가 한국에 의해서 불법 점거 당 하고 있어도 무력으로 탈환 할 수 없습니다. 외교 수단에 의해서 평화적으로 해결하는 것을 바라는 거에요. 그러니까, 과거에 일본 정부는 한국 정부에 다케시마 문제를 국제사법재판소에 부탁 하려고 제안했습니다. (한국 정부는 이것을 거부했습니다만・・・・・・. )

이 일본국 헌법은 1947년에 시행되었습니다. 리라인의 선언에 의해서 다케시마를 강탈한 이승만 대통령도 물론 일본국 헌법 규정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다케시마를 불법으로 탈취해도 일본이 무력으로 만회하려고 할 가능성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겠지요. 불법 행위를 범해도 일본의 보복을 무서워할 필요가 없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다른 나라라면 어땠어요?  한국 정부가 대화에 응하지 않는다면 전쟁이 된 가능성이 매우 높을 것입니다. 아니, 그 전에 영토 강탈 자체가 불가능 했던 것이지요. 한국 정부는, 일본이 무력을 사용하지 않는 나라, 평화적인 나라로서 재출발했던 것을 이용해 일본 영토 강탈이라는 불법 행위를 범해, 현재도 불법 점거를 계속하고 그리고 일본 정부와의 대화에도 응하지 않고 있습니다. 다케시마 문제를 통해서, 일본 국민들은 한국이라는 나라는 매우 비겁한 나라, 도덕성이 부족한 나라라고 느끼게 되었습니다. 한국 사람들 여러분, 부끄럽지 않습니까? 한국의 선진화를 위해서는 문제는 문제대로 솔직하게 인정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2011/08/07

미국무성,대화에 의한 독도 문제 해결을 촉구

미국, 「독도 문제」 한일에 자제를 기대

미국무성은  2일, 독도 영유권 문제를 둘러싼 한일의 갈등에 관해, 양국에 자제를 재촉했다.
미국무성의 토너 보도관은 이 날의 정례 기자 회견에서, 「한국과 일본은 독도 문제에 대해 지금까지 자제력을 발휘해 왔다」라고 해 「향후도 한국과 일본이 자제력을 유지해, 양국이 함께 받아 들일 수 있는 해결책을 평화적 또 외교적으로 찾아내는 것을 바란다」라고 말했다.
토너 보도관은 독도를 「리안크르 암초(Liancourt Rocks)」라고 표현해, 「리안크르 암초의 주권에 대해 우리는(특별한) 입장을 가지고 있지 않다」라고 덧붙였다. 미국은, 한국에서는 「독도」, 일본에서는 「타케시마」라고 불리는 독도를 리안크르 암초라고 부르고 있다.


중앙 일보 일본어판 2011년 8월 3일
http://japanese.joins.com/article/457/142457.html?servcode=A00&sectcode=A10




한국 사람들 여러분, 미국은 다케시마 문제를 국제분쟁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일한 양국이 대화로 해결하는 것을 촉구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한국 이외의 세계 나라의 보통 감각이에요.

문제가 있는데 대화를 거부하는 것은 국제 신의에 반하는 태도입니다.

2011/07/02

독도 밀약이 나타내는 의미



타케시마/독도 문제는 해결해야 한다는 것으로써 해결한 것으로 간주한다. 따라서 한•일 기본조약에서는 언급하지 않는다.

독도는 앞으로 대한민국과 일본 모두 자국의 영토라고 주장 것으로 한다. 서로 이에 반론하는 것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장래에 어업구역을 설정할 경우 양국이 독도를 자국 영토로 하는 선을 획정하고, 선이 중복되는 부분은 공동 수역으로 한다.

한국은 현상을 유지하여, 경비원을 증강하거나 새로운 시설의 건축이나 증축은 하지 않는다.

합의를 앞으로도 계속 지켜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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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과 한국이 한일기본조약을 체결하여 국교를 정상화한 것은 1965 6월의 일이지만, 5개월전인 1965 1월에, 위와 같은독도 밀약”이 일본의 국무 대신 코노 이치로(河野一 한국의 정일권(丁一 국무총리 사이에 합의되었다고 합니다.
이 밀약은  일본이  독도의 영유권을 주장하는 것을 인정하여 한국이 독도를 자유롭게 이용하는 것을 제한하는 내용이군요. 한국 사람들도  한국정부도 독도는 역사적 지리적 국제법적으로도 명백하게 대한민국 고유의 영토이라고 주장하지만, 그것이 사실라면 무엇으로 이러한밀약”을 맺을 필요가 있었는지요. 한국 정부는 독도는 역사적 지리적 국제법적으로도 명백하게 대한민국 고유의 영토이라고 하면서 일본정부의 독도 주장을 무시하여도 상관없었을 것입니다.

실제는 다릅니다. 독도는 실은 한국의 영토가 아니라 한국이 불법 점거하고 있는 일본의 섬입니다. 한국 정부 수뇌는 그것을 충분히 알고 있습니다. 물론, 국교 정상화 교섭에 관계한 당시의 한국 정부 수뇌도 알고 있었습니다.
타케시마/독도 문제의 해결은 14년간에 걸치는 한일 국교 정상화 교섭속에서 마지막까지 문제로서 남았습니다.
일본 정부는 일한국교를 정상화  시키는 것과 동시에 다케시마가 일본에게 반환되도록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한국 정부가 그것을 인정하여 일본에 반환하려고 하면 아무것도 모르는 국민이 화내 국교 정상화가 실현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정권이 넘어져 버리는 위험성도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타케시마/독도 문제는 해결할 있을 전망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타케시마/독도 문제의 해결을 장래의 국민에게 맡기기 위해서 밀약”이 작성되었겠지요. 이 “밀약”은 독도는 역사적 지리적 국제법적으로도 명백하게 대한민국 고유의 영토가 아님을 증명하고 있는 같습니다.
일본 정부는 "우리 나라와 한국 사이에 그런 밀약은 없다" 합니다만 , 한국 사람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독도 밀약" 한국에는 독도의 정당한 영유권이 없는 것을 지시하고 있기 때문에, "독도는 우리 "이라고 생각하시는 한국  사람들은 "그런 밀약은 있을 리가 없다" 라고 해서 전면적으로 그  존재를  부정  해야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