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4/27

헤이그 밀사가 타케시마/독도를 호소하지 않았던 이유 는 일본의 타케시마/독도 편입에는 아무 문제도 없었기 때문이다.


일본이 타케시마를 영토 편입한 것은 1905년의 이었다.

현대 한국인들은 편입에 대해서 한국의 영토 이었던 독도를 일본이 불법적으로 침탈 것이고, 한국 정부는 일본에 항의하려고 해도 당시에는 외교권을 일본에 놓치고 있었기 때문에 항의 없었던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것도 거짓말이다.

대한제국 정부는 1906 5월에 심흥택의 보고를 받아 일본이 다케시마/독도를 일본 영토로서 편입한 것을 알았다.

그러면, 1907 어째서 헤이그 특사 일본이 독도를 편입한 것을 비난 하지 않았던 것일까

헤이그 특사 사건은 1907 고종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2 만국평화회의 특사 이준, 이상설, 이위종 파견 하였던 사건이다. 고종 네덜란드 수도 헤이그에서 러시아 니콜라이2 소집한 2 만국 평화 회의에 특사를 파견하여 을사조약이 대한제국 황제의 뜻에 반해 일본에 강압으로 이루어진 것임을 폭로하고 을사조약을 파기 하고자 했다.

조선 대표들은 회의 참석과 발언을 거부당하고 말았다. 그러나 한국 대표들은 평화회의를 계기로 개최된 국제협회에서 이위종 조선의 실정을 호소하는 연설을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조선을 위해 호소한다 제목의 연설 내용은 세계 각국 언론에 보도되어 주목을 끌었으나 구체적인 성과를 얻지는 못했다.

대한제국 정부는 다케시마의 일본 영토 편입을 알고 있었는데, 헤이그에서 열강  앞에서일본이 한국의 영토를 빼앗았다라고 주장하지 않았던 것일까

만약 정말로 일본이 한국의 섬을 강탈한 것이라면 일본을 비난하기 위한 가장 재료가 되었을 것이 아닌가?

일본 정부가 모르는 가운데 고종이 은밀하게 파견한 사절들이다. 뭐든지 자유롭게 말할 있는 상황이었다. 거기에도 불구 하고 독도 문제에 대해서는 어떤 비난도 하지 않았다. 이유는 무엇인가?

이유는 일본의 타케시마 편입에는 아무 문제도 없었기 때문이다대한제국 정부는 다케시마/독도  한국 영토가 아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헤이그 밀사 사건 통해서 한국의 거짓말이 명백하게 된다.

첫째, 한국이 일본의 다케시마 편입에 항의할 없었다는 주장이 거짓말인 .

둘째, 독도가 역사적으로 한국의 영토 이었다고 하는 주장이 거짓말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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