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8/06

“석도”는 독도가 아니다 ! 1955년 한국 정부가 확인 하고 있었다.

오늘 한국 정부나 한국내 독도 문제 연구자들은, 1900년 칙령 제 41호에 규정된 「석도」가 즉 독도 이며, 대한제국은 이 칙령 제 41호로 독도를 울도군의 관할하에 두는 행정 조치를 취했다고 주장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도 역시 거짓말이라는 사실이 이번에 확인 되었습니다.


1955년 한국의 외무부 정무국(政務局)이 발간한 『독도문제 개론』(獨島問題概論)이라는 책자가 있습니다. 외무부 소속 직원들에게 독도 문제를 설명한 것입니다. 이 책에 다음과 같은 기술이 있습니다.

○독도를 구태여 울릉도의 행정구역에 편입 했다고 선언할 필요도 없었고, 또한 새삼스럽게 공적 기록을 남길 이유도 없는 것이다.

○울릉도의 행정 구획에 편입된 명시된 공적기록이 없다


이것은, 즉, 한국 정부는 칙령제41호에는 “독도” 에 대해서 아무것도 쓰여지지 않은 사실을,  바꾸어 말하면 칙령제41호의 “석도”는 독도가 아닌 것을 1955년부터 잘 알고 있었다는 말이죠. 그런데도, 오늘  정부는 국민을 속이면서 “석도가 독도다” 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독도를 둘러싼 주장들은 이와 같이 거짓말들이 넘치고 있습니다. 한국측의 주장이 거짓말로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많은 한국 사람 들은 일본의 올바른 주장을 거짓말이라고 생각해 버립니다. 독도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 한국 사람 들은 진실에 접근 해야 합니다.



독도 문제 개론 외무부 정무국(1955)

   독도에 대한 역사적 고찰
 

    독도에 관한 고기록



6 울릉도 개척과 독도
 울릉도 소속 문제가 해결된 후에도 우리나라에서는 여전히 울릉도에 사람이 입주함을 금지하고 격년으로 한번씩 평해군수 혹은 울진 현령을 파견하여 거민 유무를 순심하하고 본도 소산의 대나무, 향나무, 산삼을 채취하고 가지어를 포획 하였다. 그런데 일본은 막부가 도괴하고 소위 명치 유신이 이러나 막부 시대의 모든 금령을 해제할 뿐 아니라 해외 진출을 장려하게 까닭, 일본인은 다시 울릉도에 진출하여 울릉도를 마츠시마(松島)변칭, 천고(千古) 을 대이지 아니 울창한 목재를 도벌 하였. 러므로 고종18년신미(서기1881, 일본 명치14), 우리나라 정부는 일본 외무경대리 우에노 가게노리에게 日省高宗18月癸未同文彙考附編一禁二立己曹判書以禁蔚陵島伐木事抵外務卿書外務大輔答書에서 보는 바와 같 엄중한 항의를 하는 동시에, 섬을 (空曠) 두는 것이 국방상 소려 비추어, 5월에 부호군리규원을 울릉도 검찰사에 임명하여, 외의 형세를 세밀 조사한 후에 종래의 방침을 변경하여,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고종18년신65 기해조에 보면 울릉도 개척령이 발포되 울릉도에 들어가 사람을 모집 하였.

  병자수호조규 이래 일본인의 국내에 잠입 하는 사건이 점성(漸盛)하여 그들에 대한 계엄이 철저해지 였다. 때를 같이 하여 문을 열게 강원도 경상도 연안 사람은 할것도 전라도 충청도 지방으로부터도 이주하는 사람이 많아, 울릉도의 산곡 당년 개척 되었다.

 다음 고종19년임오(서기1882) 8월에 울릉도에 도장을 두어, 다음 계미 3월에는 참의 교섭 통상 김옥균을 동남 제도 개척사 관포경사로 , 백춘배를 종사로 , 울릉도의 관수를 첨사로 하여, 여러 각도로 울릉도 경영을 적극화 하려 . 김옥균의 개척 사업은 미쳐 취서 하기 전에 갑신정변으로 말미아마 좌절 리고, 틈에 일본인의 울릉도 침랭이 점점 공연화 하여 갔다. 도장이라 내부로 부터 배치하여 섬의 민정 처리에 ()게한 것이여서, 체면 유지도 곤란할 도이 드니, 광무5(서기1901) 칙령으로서 울릉도를 군으로 개칭 도장을 군수로 개정하여, 처음으로 지방 행정의 1단위를 지었.

 독도는 기록과 실제 지식으로 벌서 부터 알려지울릉도의 속서()로서 봉금기(封禁期) 에도 왕래가 아니한 전술한 바와 같으니, 독도를 구태여 울릉도의 행정구역에 편입 했다고 선언할 필요도 없었, 새삼스럽게 공적 기록을 남길 이유도 없는 것이다. 우리 옛날의 가지도, 삼봉도, 우산등이 이전에는 해상고현(海上孤縣)의 한 암서(岩嶼)로서 문제가 되려 하여도 될 만한 사건이 있지 않었으며, 그것이 문제된 것은 일본인의 강치 보획지로 이용하고 저의 시마내현령으로 편입함에 시()한 것이니, 이렇게 되기 이전에 울릉도의 행정 구획에 편입된 명시된 공적기록이 없다고 해서 독도가 울릉도의 군수의 관할하에 있었다는 사실을 부인 못하는 것이다. 따라서 독도를 일본령이라고 통고하여 오자 광무10년에 울릉도 군수가『우리 나라 소속 독도』라고 기록하여 중앙정부에 보고 하였던 것이다.


4 件のコメント:

  1. 『鬱島郡守 沈興澤의 報告書』, 1906. 3. 29.

    本郡所屬 獨島가 在於本部外洋百餘里許이옵더니 本月初四日 辰時量에 輪船一隻이 來泊于島內道洞浦而 日本官人一行이 到于官舍하야 自云獨島가 今爲日本領地故로 視察次來島였다이온바 其一行則 日本島根縣隱岐島司東文輔及 事務官神西由太郞 稅務監督局長吉田平吾 分署長警部 影山岩八郞 巡査一人 會議員一人 醫師技士各一人 其外隨員十餘人이 先問戶摠人口土地多少하고 次問人員及經費幾許 諸般事務를 以調査樣으로 錄去이압기 玆以報告하오니 照亮하심을 伏望.

    光武十年丙午 陰三月 五日

    심흥택의 보고에서 주목할 것은 [본군 소속 獨島가 본부 외양 백여리허에 있삽더니[…]]라고하여 독도가 자기의 통치군(본군)인 울도군 소속임을 명확히 밝혀 항의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즉 심흥택은 '독도'가 '울도군' 소속임을 명확히 하여 '대한제국 영토'이고 자기의 행정 책임군인 울도군에 속한 영토임을 명확히 천명한 것이었다.

    返信削除
  2. 대한제국 칙령 반포 후인 1902년에 일본인들이 독도에서 잡은 전복에 대한 세금을 울도군수에게 납부하였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이런 세금 기록은 1905년 이전에 일본이 독도를 한국영토로 인정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返信削除
  3. What the...i read the whole script and found that you are deceiving us.it doesnt mean koreans in 1955 acknowledged that their kingdom didnt have the rock in their territory. They are saying, because the rock is obviously in the territory of korea, they didnt have to actually mention it in decree.

    返信削除
  4. protocolmaxim w,

    The theme of this article isn't that. Could you read the title of this article well?


    返信削除